초록

1920년대는 식민지조선의 근대극이 형성된 시기이다. 1910년대를 지배했던 신파극이 급격하게 세력을 잃어갔고, 신극이 서서히 연극계의 주류로 부상한 시기였기 때문이다. 1921년 「극예술협회」의 순회공연이 이러한 흐름을 이끌어낸 기폭제 역할을 하였으며, 세 편의 공연작품 중에서 <김영일의 사>는 형성기 식민지조선 근대극작품의 원형에 해당하는 중요한 성과를 남겼다. <김영일의 사>는 식민지조선의 근대극이 감당해야 하는 모든 조건을 고려하여 창작된 작품이다. 식민지조선의 극작품에 가해지던 엄격한 일제의 검열, 신파극에 길들여져 있는 관객들, 3․1만세운동 이후 증폭되고 있던 민중계몽에 대한 사회적 요구, 열악한 극장시설 및 공연담당자들의 부족 등등이 고려되어야 할 조건이었다. <김영일의 사>의 김영일은 근대주체로서 자각이 뚜렷한 인물이다. 그는 일제라는 규율권력의 수행자(agent)가 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식민지 근대주체로 탄생하였다. 자신의 깨달음을 실천하려는 김영일의 배경에는 전통적 유학의 극기복례(克己復禮)적 사고와 톨스토이(Tolstoy)의 사상이 놓여 있다. <김영일의 사>는 극의 사실성 확보에 상당한 노력을 경주하였다. 극짜임(plot)에서도 긴밀한 인과성을 확보하고 있으며, ‘암시’와 ‘발견’ 등 적절한 공연기법을 구사하여 관객들에게 강한 현실감을 심어주는 데 성공하였다. 식민지조선에서 온 가난한 유학생들이 <김영일의 사>의 중심인물이긴 하지만, 그들의 행동은 식민지조선의 근원적인 모순을 밝히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. 그것은 일제의 검열을 넘어서기 위해 의도적으로 ‘일본식 자연주의극’을 수용하였기 때문이다. <김영일의 사>의 공연장을 찾은 ‘자발성 높은 식민지조선의 관객’은 적극적으로 작품을 해석하여 김영일의 죽음을 식민지조선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주었다. ‘자발성 높은 식민지조선의 관객’이 만들어내는 ‘내부적 동질감’은 <김영일의 사>를 한 편의 계몽극으로 완성시켜주었다. <김영일의 사>가 지닌 근대극적 특징과 공연에서 얻어진 경험은 형성기 식민지조선 근대극에 큰 영향을 남겼다. 192,30년대 식민지조선 근대극의 주류를 형성한 사회극(social drama)의 특징은 <김영일의 사>에서 시작된 것들이 계승․발전되면서 형성된 것이고, 1931년에 발표된 유치진의 <토막>은 그러한 흐름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.

키워드

조명희, 김영일의 사, 근대극, 근대 주체, 사실성

참고문헌(26)open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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